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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criticism
칼 럼-미술산책

ㆍ작성일	2010-07-12 13:25
ㆍ분 류	기타

ㆍ조회: 757

보따리-2002년 학생생활연구소 원고
보자기는 한국인의 융통성과 신축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색상의 아름다운 배합과 조각의 적절한 배열에서 보듯이 한국인의 뛰어난 조형의식을 보여준다. 우리의 미술은 삶에 녹아있다. 우리 미술은 삶과 어울렸을 때 가장 빛난다. 보자기에는 어머니의 정과 삶의 지혜가 들어있다. 우리의 산하가 들어있고 마음이 들어있다. 그 보자기가 사라지고 있다.
보자기가 보따리로 돌아왔다. 우리의 마음 속에 고향처럼 존재하던 보자기가 한 작가의 영적인 변환을 통해 보따리로 헌정되었다. 김수자의 보따리를 <싸고 푸는> 행위를 보면 인간은 정주(定住)와 유랑(流浪)을 반복하는 존재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인간이 유랑할 때면 인간은 정주를 생각한다. 또한 인간이 정주 했을 때는 유랑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인간은 정주적 인간보다 유랑적 인간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김수자의 보따리에는 기본적으로 천, 이불보, 옷, 물감 등의 물질이 존재한다. 이런 물성(物性)을 김수자는 그의 바느질을 통해서 하나의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김수자는 물질 자체의 가변적 형식인 외연에만 집착하지 않고 물질 내면에 존재하는 내포를 이야기한다. 어렸을 적의 삶의 체험이 곧 미적 체험으로 그의 내면에 존재했고, 그 이야기를 보따리에 가득 담아 표현한다. 삶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보따리는 고급적 이미지보다는 서민적 이미지에 가깝다. 그것을 의식해서일까. 김수자의 보따리는 무척 화려하다. 보따리 속의 물건들이 속된 삶의 웅크림일지라도 겉의 향취는 화려함 그 자체다. 마치 속세의 아픔을 등지는 장례의식 같다. 아픔을 감추려고 더 화려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보따리는 우리의 의식 속에 널려있다. 우리의 유랑적 삶 속에 보따리는 늘 존재한다. 우리의 삶은 그 보따리를 싸고 푸는 행위를 반복한다.
1995년 용유도 해안에 설치된 김수자의 <보따리>란 작품은 두 개의 화려한 보따리가 포개져 있다. 떠나간 연인,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는 망부석이 이런 모습일까. 어머니의 정과 한, 그리고 그 화려함 속에서 그것을 극복하려는 뚝심도 보이는 듯하다.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이 나라의 한 여인으로서 김수자의 포용적 관심이 보인다.
김수자의 보따리는 인간의 신체를 연상시킨다. 수많은 타인과 자신의 신체가 보따리에 싸여지고 또 풀리는 행위의 반복 속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화려한 이불보에 싸여진 인간 타성과 포박된 인간 본성에 대한 자각을 보따리는 일깨우게 만든다. 김수자는 보따리를 통해 인간의 삶을 이야기한다. 작가와 관객이 보따리를 싸고 풀면서 작품과 삶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란 것을 확인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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