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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lo Exhibitions
개인전 ♣♧
Solo Exhibitions gallery
  제3회 개인전-작품
ㆍ작성일: 2010-07-13 10:57 ㆍ조회: 728 ㆍ분류: 3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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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탄생을 기대하며 
 
  예술은 모름지기 즐거워야 한다. 즐거워야 순수해진다. 순수한 가운데서 새로움이 나오고, 그 새로움이 창작자와 수용자에게 즐거움을 준다. 순수함은 표현과 삶이 일치될 때, 빛을 발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거짓말쟁이다. 나의 표현은 순수하지도, 나의 삶은 더 이상 즐겁지도 않다. 삶이 즐겁다고 생각되면, 표현은 어색해지고, 표현이 새로우면, 삶이 피곤하다. 즐거운 삶 속에서도 작업실은 공포의 장소이다. 빛이 두려워 두터운 종이로 발라 놓은 창문으로 걸러진 빛이 작업실 안으로 스며든다. 나의 어두움은 더 이상 철학적 유현미(幽玄美)가 아니다. 어두움은 어두움 그 자체이고, 나는 나일 뿐이다. 이 어두움이 나의 삶과 유기적으로 결합했을 때, 그 삶의 표현이 「脫 」이다. 어두움은 새로움을 잉태한다. 고통이 없는 새로움은 없을까? 빛이 무섭다. 밝음이 무섭다. 예술이 무섭다. 나는 지금 거짓을 그리고, 착각과 망상을 그리고 있다.
 무엇에 그렇게 많은 속박을 당했는지 「자유」에 대한 나의 희구는 나의 마음 속 어느 구석에선가 항상 꿈틀거리며 비집고 나오려고 한다. 자유를 주장하면 할수록 삶의 깊이는 점점 더 쪼그라든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의식과 감정을 깨뜨리려고 하는데서 오는 한계일까? 「그린다」는 「의식」의 흐름과 「그린다」는 「행위」의 과정을 일치 시키려는 노력은 자꾸 어떤 벽에 틀어 막힌다. 순수에의 희구와 이해, 삶의 과정이라는 저 만물과 자아의식의 근원적 존재를 찾아서 얼마나 많은 자기환원과 시행착오가 필요할까? 나의 삶의 과정은 어떤 식으로 확산되고, 그 표현은 궁극의 목적인 자유를 언제 맛보게 되는 것일까? 그 의식과 과정, 삶과 표현이 일치되는 날, 나의 닫혀진 창문이 열려질 수 있을까?
 나는 나의 마음을 믿지 못한다. 가변적이고, 이기적이고, 꿈 꾼 듯이 사고 한다. 나의 감성과 감정은 늘 흔들리고, 필요에 의해 움직이고, 보여짐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보여짐의 대상이 나의 사고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 속의 감정 상태에 따라 대상의 표현이 바뀐다. 텔레비젼 속의 코메디언이 나를 웃기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의 내가 나를 웃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코메디언이 될 수 있을지언정 사람들을 웃길 수는 없다. 내가 작가는 될 수 있어도 사람들을 감동시키거나, 이해시킬 수는 없다. 삶의 주체인 인간에 대한 관심은 또다시 나의 작업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자연의 감성에 인간의 이성이 곁들여져서 그럴까? 내 작품에 욕망이 담기기 시작해서 일까? 그 인간에 대한 관심은 결국 나에 대한 관심이다. 나의 존재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고, 또 성찰하고 있는대로 보고, 느낀대로 보는, 새로움과 순수함을 잉태한 원초적 생명을 그리고, 외경하면서,
 새로운 탄생을 기대하면서.......
* 위 글은 '공간'지 1995년 4월호에 게재된 것임.
 
 
Expecting a new birth
 
  Art should be pleasant, for it becomes pure only when he is pleasant. Something pure creates something new, which, in turn, gives pleasure to the creator and the viewer. Purity, when the creator's life does not contradict his expression, becomes a genuine purity. In this sense, I think I'm not truthful. My expression is no longer pure and my life is not pleasant, either. So when life seems to be pleasant, expression becomes awkward. When expression looks new, life becomes boring. As a result, my work place turns into a dreadful space. The sun light filters into the room and, then, my darkness is no longer the philosophical beauty of dreaded darkness itself so I exist as myself. When this combined with my life, to express my life is to escape from the darkness. Darkness leads to a new birth. Isn't there any one afraid of art? I am now drawing something untrue.
 I am not conscious of how much my liberty has been restricted. But I always feel  the longing for freedom stir within me. the more I long for freedom, the shallower my life becomes. Is this some kind of limit which results from the attempt to break consciousness from emotion? Whenever I I try to combine the consciousness of 「Drawing」 with the behavior of 「Drawing」, I feel I am faced with a wall which cannot overcome. Is the understanding and longing necessary? When the consciousness coincides with behavior and life with expression, Will my closed window be opened again?
 I do not believe in myself, because my mind changes so easily, works very selfishly and, sometimes, dreams absurd dreams. My sensitivity and emotion are too shaky. They are moved by a minimum impetus. When something is shown to me, my mind is quicker than my brain to respond to it. in other words, my mental condition changes the expression of the object influences my brain. So it is not a comedian on TV for myself but not for others. I cannot make them laugh. I have become a writer for myself but not for others. Neither can I move them nor let them understand me.
 My interest in human beings confuses me and my work. Is that because reason is added to the natural emotion, or because reason is added to the natural emotion, or because some kind of desire is added to my work? My interest in human beings means that in myself. I reflect on my own ego, trying to see what is felt. I am also trying to draw the primitive power of life which generates something new and pure, expecting a new birth
* The illustration discribed above was published in 'SPACE', April,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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