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시간의 퇴적과 풍화
화가 이용택의 충북 청년미술상 수상을 직장의 동료로서 진심으로 축하한다. 더구나 그의 그림을 스케치하는 기회까지 주어져 더욱 기쁘다. 그러나 한편 두렵다. 필자는 회화에 관해선 문외한이다. 회화는 늘 외경이다. 그 비의의 세계에 접근한 체험조차 확실치 않다. 그러나 일반인도 그림에 대한 표피적인 생각과 감각적인 체험의 일단을 피력할 수도 있다, 는 다소 경조부박한 망동이 필자를 추동했다.
이용택의 그림을 대하는 사람은 다소 어리둥절할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한국화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면 더욱 난감해 질 것이다. 한국화라면 전통 산수화, 인물화, 화조, 서예, 전각 등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다소 추상적으로 보이는 그의 작품은 우리의 관습적 이해를 참담하게 짓밟기 때문이다. 마치 서양화의 추상세계와 마주한 것과 같은 묘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는 전통적인 동양화의 주제나 기법 그리고 재료의 구속에서 탈피하여 상상의 세계로 비약하길 원한다. 일탈은 자유롭다. 자유로움은 화석화된 관념으로부터 초탈하여 비의의 세계로 비행하고 유영하도록 유혹한다.
기법과 재료로부터의 자유는 곧 정신의 자유로 연계되고 그 자유로움은 그림에서 뚜렷한 형상이 아니라 모호한 흔적으로 나타난다. 그 흔적은 허한 공간에 먹처럼 번지고 스며들며 삶의 궤적을 형상한다. 그러나 그 흔적은 일회적이고 찰라적인, 마치 일진광풍의 칼춤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흔적에는 시간의 풍화작용이 농염하게 축적되어 있다. 그는 생각을 흔적으로 남기고 그것을 덧칠함으로써 흔적을 없앤다. 그러나 덧칠은 또 다른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마저 덧칠하여 또 다른 흔적을 형성한다. 생성과 무화의 반복이다. 그는 이러한 반복적 작업을 통해 화폭에 시간의 깊이와 사색을 담아낸다. 그러므로 흔적은 끊임없는 자기부정과 자기긍정의 변증법이다. 인간과 세계와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의 사슬이 바로 흔적인 것이다.
따라서 흔적은 우리의 삶과 죽음에 관한 원론적인 질문이기도 하고 피안과 차안의 갈등, 혹은 죽음에의 유혹이기도 하고 허무에의 침잠이기도 하며 애매모호함이기도 하다. 어차피 우리가 살아온 흔적이 그렇지 않던가. 이처럼 그는 반복되고 지루한 그러나 치밀한 작업을 통해 삶의 흔적을 끊임없이 지우고 생성함으로써 존재론적 성찰을 유도한다. 시간의 퇴적층을 형성하고 풍화작용 끝에 남은 흔적은 따라서 과거이기도 하고 현재이기도 하며 미래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흔적은 우리를 존재의 원시와 대면케 한다. 원시성은 어차피 새로운 탄생이며 출발이고 회귀이며 소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시간의 전개를 서사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시적으로 간파한다. 그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비유적 형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는 구상보다 추상이 갖는 내포에 기꺼이 경도된다. 흔적은 선과 면을 형성하여 춤추듯 유희하면서 허(虛)로 충만하다. 기존의 동양화가 갖는 은일한 내면의 깊이가 그의 화면에서 새롭게 파악되고 그것이 진지한 명상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광물처럼 단단하고 화석화된 정신을 파괴하는 정신적 고통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또한 그런 고통을 감내할 때 그의 그림이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조용훈, 문학평론가, 청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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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개인전-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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